무어의 법칙…관찰 하나가 60년의 로드맵이 된 이야기
1965년의 짧은 기고문에서 시작된 "집적도는 주기적으로 두 배가 된다"는 관찰은 어떻게 산업 전체의 약속이 됐나. 법칙의 정체, 자기실현의 구조, 그리고 이후 시대의 성장 문법을 정리한다.
특집 3주차의 마지막 기사는 역사다. 반도체 산업이 60년 가까이 같은 방향으로 달릴 수 있게 만든 이상한 약속, 무어의 법칙 이야기다.
시작, 법칙이 아니라 관찰이었다
1965년, 훗날 인텔을 공동 창업하는 고든 무어는 한 잡지 기고문에서 단순한 추세 하나를 지적했다. 칩 하나에 집적되는 소자의 수가 일정 주기로 두 배씩 늘고 있다는 것. 당시 데이터는 몇 개의 점에 불과했지만, 무어는 이 추세가 당분간 이어지리라 내다봤다(주기는 이후 “약 2년”으로 다듬어졌다).
주목할 것은 이것이 물리 법칙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연이 강제한 것이 아니라, “이 속도로 가능할 것”이라는 관찰이자 전망이었다. 그런데 이 전망이 놀라운 방식으로 스스로를 실현시켰다.
동력, 예언이 달력이 되다
산업 전체가 이 전망을 공동의 일정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칩 회사는 2년 뒤 두 배 집적을 목표로 개발 일정을 짜고, 장비·소재 회사는 그 일정에 맞춰 다음 세대 노광기와 감광액을 준비하고, 소프트웨어 회사는 2년 뒤 두 배 강해질 하드웨어를 전제로 제품을 설계했다. 모두가 같은 달력을 보고 움직이니, 수확이 달력대로 도착했다. 전형적인 자기실현적 예언의 구조다.
경제적 토대도 분명했다. 집적도가 두 배가 되면 같은 웨이퍼에서 더 강한 칩이 더 많이 나온다. 즉 성능당 원가가 구조적으로 하락한다. 이 원가 하락이 새 수요 (PC→인터넷→스마트폰)를 만들고, 그 수요가 다음 세대 투자를 정당화하는 선순환이 60년을 돌았다. 컴퓨터가 방 하나 크기에서 주머니 속으로 들어온 여정의 뼈대가 이 선순환이다.
지금, 문법이 갈라진 시대
미세화가 원자 단위에 다가서며 달력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 세대를 줄이는 비용이 급증했고(EUV 기사에서 본 그 세계), 웨이퍼 대형화도 멈췄다(300mm 기사). “법칙의 종말”이 반복 선언되는 이유다. 그러나 산업의 대답은 종말이 아니라 문법의 분화였다. 옆으로 줄이는 대신 위로 쌓고(낸드 적층·HBM), 여러 칩을 정교하게 붙이고( 토리의 용어 메모 패키징 만들어진 칩들을 자르고 쌓고 연결해 완성품으로 조립하는 반도체의 후공정. HBM처럼 칩을 수직으로 쌓는 시대가 되며 기술 난도와 중요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패키징 자세히 보기 → ·칩렛), 범용 대신 용도 전용 칩(AI 가속기)으로 성능을 얻는다. 특집이 다뤄 온 주제들이 정확히 이 갈래들이다.
- 01
법칙의 정체
자연법칙이 아니라 산업이 합의한 일정표, 그래서 "물리적 종말"보다 "경제적 유지 가능성"이 늘 진짜 쟁점이었다.
- 02
원가의 선순환
집적 두 배 = 성능당 원가 하락 = 새 수요 = 다음 투자, 60년 성장의 엔진은 이 경제 회로였다.
- 03
이후의 문법
쌓기·붙이기·전용화, 미세화 이후 시대의 성장 문법이자, HBM·패키징·AI 칩 뉴스를 하나로 묶는 열쇠다.
원문은 법칙이 아니라 잡지 기고였다
「법칙」이라는 이름 때문에 물리 법칙 같은 것을 떠올리기 쉽지만, 출발점은 잡지 기고문이다. 고든 무어는 1965년 4월 19일자 《Electronics》 제38권 8호에 「집적회로에 더 많은 소자를 밀어 넣기」라는 글을 실었다. 당시 그는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연구개발 이사였다.
그 글의 부제가 지금 읽어도 흥미롭다. 1975년이면 칩 하나에 65,000개의 소자를 넣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60년 뒤의 칩이 담은 소자 수를 생각하면 대담하기보다 소박한 예측이었던 셈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관찰이자 산업 계획이었다는 점이다. 물리가 정한 한계가 아니라 업계가 목표로 삼아 맞춰 온 일정표였고, 그래서 「법칙」이 느려졌다는 말은 자연이 바뀌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일정을 지키는 비용이 이득을 넘어섰다는 뜻이다.
실무에서 틀리기 쉬운 지점
첫째, 무어의 법칙을 물리 법칙으로 읽는 것. 위에서 본 대로 출발은 관찰과 전망이다. 업계가 그 속도를 목표로 삼아 투자를 맞췄기 때문에 오래 유지됐고, 그 합의가 흔들리면 속도도 흔들린다.
둘째, 「법칙의 종말」을 기술의 종말로 읽는 것. 미세화가 느려진 자리를 적층과 패키징, 전용 칩 설계가 메우고 있다. 같은 목표를 다른 길로 추구하는 것이지, 성능 향상이 멈춘 것이 아니다.
셋째, 소자 수와 성능을 같은 것으로 보는 것. 소자를 더 넣어도 전력과 발열이 따라오지 못하면 성능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지금의 경쟁이 전력당 성능으로 옮겨 간 이유이며, 그래서 데이터센터의 전기 청구서가 반도체 설계의 조건이 됐다.
넷째, 예측의 정확도로 이 글의 가치를 재는 것. 1975년 65,000개라는 숫자는 지금 기준으로는 작다. 그러나 이 글이 남긴 것은 숫자가 아니라 산업이 함께 볼 달력이었고, 60년 동안 그 달력이 투자와 연구의 속도를 맞춰 왔다.
자료
- Computer History Museum Gordon Moore, 'Cramming more components onto integrated circuits' (Electronics, 1965) Electronics 제38권 8호(1965년 4월 19일) 게재 · 당시 페어차일드 반도체 연구개발 이사 · 부제에 1975년까지 칩 하나에 65,000개 소자를 넣게 될 것이라는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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