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 치킨게임…산업이 셋만 남을 때까지 벌어진 일
수십 개였던 D램 회사는 어떻게 셋이 됐나. 불황에도 증산을 멈추지 않는 치킨게임의 논리, 2000년대 후반의 마지막 대결전, 그리고 살아남은 자가 가져간 것을 역사로 정리한다.
HBM 3강 기사에서 “왜 셋뿐인가”를 기술 장벽으로 설명했다. 그런데 그 이전에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D램 회사 자체가 왜 셋만 남았나. 오늘은 그 역사다.
무대 장치, 치킨게임이 필연이 되는 성질
한때 D램을 만드는 회사는 미국·일본·유럽·한국·대만에 걸쳐 수십 개였다. 이 북적이던 산업이 참가자를 줄여 온 메커니즘은 사이클 기사에서 본 세 가지 성질의 조합이다. 규격품이라 가격 외의 차별화가 어렵고, 고정비가 거대해서 공장을 세우는 순간 가동을 멈추는 쪽이 손해이며, 공급이 경직되어 불황에도 물량이 줄지 않는다.
이 조합에서 불황의 논리는 뒤틀린다. 가격이 원가 아래로 떨어져도 각자 “내가 버티면 경쟁자가 먼저 나가떨어진다”며 오히려 증산한다. 자동차 두 대가 마주 달리는 치킨게임 그대로다. 그리고 게임이 끝날 때마다 산업 지도가 다시 그려졌다. 1980년대의 겨울은 D램의 발상지였던 미국 기업들의 대거 철수와 일본의 전성기를 만들었고, 그다음 겨울은 일본의 퇴장과 한국의 부상으로 이어졌다.
마지막 대결전, 2000년대 후반
체제를 오늘의 모양으로 굳힌 것이 2000년대 후반의 마지막 대결전이다. 공급 과잉 속에 D램 가격이 폭락했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겹치며 산업 전체가 원가 밑에서 피를 흘리는 소모전이 벌어졌다. 이 겨울을 지나며, 독일의 키몬다가 파산했고 (2009), 버티던 일본의 엘피다도 결국 쓰러져 미국 마이크론에 인수됐다(2012~2013). 대만 업체들은 범용 D램의 선두 경쟁에서 밀려났다.
연기가 걷혔을 때 남은 것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오늘의 3강이다. 그리고 생존자들이 가져간 것은 시장 점유율만이 아니었다. 참가자가 줄어든 산업의 규율이다: 셋만 남은 시장에서는 각자의 증산이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서로 뻔히 알기에, 과거처럼 무모한 물량 경쟁으로 치닫기 어려워졌다. 3강 체제 이후 사이클의 진폭이 과거의 극단보다 완만해졌다는 관찰이 많은 이유다.
오늘과의 연결, 새로운 시험대
이 역사는 특집의 현재 이슈들과 곧장 이어진다. HBM 증설 경쟁은 “규율이 잡힌 3강”이 다시 대규모 투자 경쟁에 들어선 국면이다. 다만 이번에는 규격품이 아니라 고객 인증이 물량을 배분하는 시장( 토리의 용어 메모 HBM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가 오가는 통로를 극대화한 고대역폭 메모리. AI 가속기 옆에 붙어 연산의 데이터 병목을 푸는 핵심 부품이다. HBM 자세히 보기 → 3강 기사)이라, 과거와 같은 무차별 치킨게임과는 문법이 다르다. 그리고 대규모 보조금을 업은 새 참가자들의 진입 시도는, 수십 년 만에 “참가자 수”라는 변수 자체를 다시 흔들고 있다. 다음 기사들에서 다룰 주제다.
- 01
게임의 규칙
규격품+거대 고정비+공급 경직 = 버티기 싸움, 이기는 자가 아니라 남는 자를 뽑는 구조였다.
- 02
역사의 마디
겨울마다 지도가 바뀌었다. 미국의 철수, 일본의 흥망, 키몬다 파산(2009)·엘피다 인수(2012~13), 그리고 3강.
- 03
규율과 시험
3강 체제는 사이클의 진폭을 눌러 왔다. HBM 투자 경쟁과 신규 진입 시도가 그 규율의 새 시험대다.
다음 판이 시작됐는지 무엇으로 아는가
「증설이냐 감산이냐」를 뉴스 문장이 아니라 숫자로 확인하려면 볼 곳이 정해져 있다. 도토리 창고가 매달 받아 오는 계열 가운데 이 판을 비추는 것은 장비 수입이다.
2026년 7월 반도체 제조장비(HS 8486) 수입은 25.4억 달러였다. 장비는 지어질 공장의 선행 지표이므로, 이 숫자가 여러 달 이어서 늘면 어딘가에서 생산능력이 불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회사들이 「규율」을 말하는 국면에서 장비 수입만 조용히 늘고 있다면, 그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중이라고 읽어야 한다.
반대로 감산이 실제로 진행되면 장비 수입이 먼저 식고, 그다음에 단가가 반응하고, 마지막에 실적이 따라온다. 말보다 장비, 장비보다 단가, 단가보다 실적이라는 순서를 기억해 두면 뉴스의 위치가 잡힌다.
실무에서 틀리기 쉬운 지점
첫째, 「치킨게임」을 가격 인하 경쟁으로만 이해하는 것. 메모리에서 무기는 값이 아니라 생산능력이다. 증설로 공급을 늘려 값을 떨어뜨리고, 원가가 높은 참가자가 먼저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구조다. 값은 결과이지 수단이 아니다.
둘째, 3강 체제를 안정으로 읽는 것. 참가자가 적으면 규율이 유지되기 쉬운 것도 사실이지만, 한 곳만 이탈해도 판 전체가 흔들린다. 소수 경쟁은 안정이 아니라 높은 상호 의존이다.
셋째, 감산 발표를 즉시 효과로 계산하는 것. 이미 만들어 둔 재고가 소진돼야 가격에 반영된다. 발표와 반응 사이의 시차 때문에, 발표 직후의 가격 움직임으로 정책의 성패를 판정하면 대개 틀린다.
넷째, 이 경쟁을 과거의 이야기로 두는 것. 급소는 시대마다 옮겨 간다. 지금은 범용 D램이 아니라 고부가 메모리 쪽에서 같은 게임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 결과는 kg당 단가 곡선에 먼저 나타난다.
자료
- 관세청 품목별 수출입실적 오픈API HS 8542·8486 · 2026년 7월 · 도토리 창고 축적분
- 금융위원회 주식시세정보 오픈API 삼성전자·SK하이닉스 종가 · 도토리 창고 축적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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